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 효과전

국립현대미술관 특별전 는 백남준의 역사 전시의 주요 주제를 통해 1990년대 한국 미술의 상황을 새롭게 조명하는 전시이다.
백남준이 전하는 정보와 전시의 중요성을 짚어보자.

백남준 작가 정보

1984. 30년 만에 귀국한 백남준은 1980년대와 1990년대 문화기획자이자 문화번역가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특히 한국과 세계를 잇는 전략적 행보로 이름을 알렸다.
1986년 제10회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1993년 대전엑스포는 모두 세계와 함께 수많은 행사를 펼쳐온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잘 활용했다.
정계와 재계를 넘나드는 백남준의 전방위적 활동은 상업 광고뿐 아니라 전시와 행사를 기획함으로써 국제적 네트워크가 되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개막과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건립을 계기로 백남준은 미술계의 한 작가가 아닌 국민적 스타가 되었다.
전례 없는 활약의 세계를 통해 새로운 영상 장르와 포맷을 제시했다.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새로운 정체성을 전 세계에 알리려는 백남준의 노력은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뉴 민주주의, 세계화, 근대화, 과학기술의 발달로 한국 미술계 전체에 스며든 작가였다.
두 번의 전시 1992년과 1993년 현대 미술 전시회에는 100,000명 이상의 방문객이 모였습니다.
국내 최초로 1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전시회였다.
세기말 한국 사회의 활발하고 활발한 문화담론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원동력을 만들어낸 작가이다.

전시의미와 한국미술

비디오, 컴퓨터 및 키네틱 머신. 복사 기술을 포함한 과학 기술과 예술 매체의 확장은 예술계의 기존 실험 영역을 넘어 새로운 경향을 탐색할 수 있는 제3의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덴티티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이브리드 프로세스를 거칩니다.
2개 이상의 정체성이 혼합되어 혼성화가 일어날 때 제3의 새로운 영역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1990년대 한국미술에서 제3의 공간은 한국과 세계가 만나는 새로운 대안적 정체성의 개념으로, 과학과 기술, 예술과 자본의 의도적이고 우연한 접촉을 통해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하이아트와 대중문화, 혼합매체와 설치 사이의 공간으로 기능했다.
회화, 조각, 판화, 서로 접할 수 없었던 유사장르들은 백남준 작가의 손에서 매체적 속성을 확장하고 혼합매체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백남준 감독의 비디오 설치 작업을 통해 그는 혼합매체 분야를 미술계의 최전선으로 끌어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작품과 1990년대 활발하게 활동했던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선보이며, 그들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며 복잡하고 힘들었던 역사를 되짚어본다.
근대적 희망과 세기말의 공포가 교차했던 1990년대 한국의 상황을 30년이 지난 현재로 가져와 당시를 살아가는 관객들과 공유한다.